목장훈련교안
신자의 삶의 여정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부정적 감정은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나이 여하를 무론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찾아오는 유쾌하지 않은 감정입니다. 이 부정적 감정의 배경에는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갖지 못할 때 발현됩니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하고 인생을 산다면 이 감정의 덫에서 해방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해답을 얻기 전에 구원받기 전의 상황으로 잠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구원받기 전, ‘내가 누구인가’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상황을 소위 ‘영적 사망의 상태’ 곧 ‘자연인’이라 부릅니다. 이 자연인이란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한 인생이 출생할 때 자신을 존재케한 창조주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사람을 명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자연인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주로 지위나 소유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것으로 자기가 누구인자를 확인합니다. 또 돈이 많을 때에는 그것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합니다. 구원받기 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기억할 것은 이 세상에는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많고,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훨신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최고의 권력자도, 최고의 재벌가도, 최고의 미인도 말못하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태어날 때 자신이 어떤 존재로 출생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본래 만들어질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선이 그 안에 탑재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파괴되었고, 아담 이후 출생하는 모든 인생은 죄(영적 사망의 상태) 가운데 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기 청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1차적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 구원받은 상태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요한은 당시 성도들에게 ‘자녀들아...’라고 호칭합니다. 성도들이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정체성에 대한 답이며, 이것을 확인해야 열등감, 패배감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세상을)이기었나니...’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 패할 수 없는 자들임을 암시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 곧 자녀됨을 명확히 인지하면 어떤 삶의 정황에서도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