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3-05-13 17:21:52 조회수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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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1]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5월달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돌아보면, 늘 성실하시고, 긍휼이 한이 없으시고, 자기 백성에 대하여 늘 부요케 하시는 주()이심을 알게 됩니다. 5월달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삶의 영역에 늘 충만하길 기대합니다. 5월의 사역의 주제는 선한 능력으로 고난을 넘는 공동체입니다. 신자의 삶에 고난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늘 따라 다닙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고난 없이 지나간 시기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이후, 로마의 핍박으로부터 시작하여, 오스만투르크의 공격, 수많은 이교도들의 도전에 기독교 신앙은 늘 마주해야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신자들의 신앙은 더 단단해 졌고, 복음 전파의 강도는 더 활발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난은 신자를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이끄는 촉매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는 것처럼, 신자 앞에 다가온 고난을 극복할 때 영원한 중한 것을 취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주 고난을 넘는 말씀의 위로의 주제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고난 앞에 직면한 시편기자가 그 고난을 거뜬히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고난 한 가운데서 부어주시는 말씀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주, 우리는 말씀의 위로를 통해 어려운 현실을 넘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말씀의 권면과 위로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통해 신자들의 삶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금주의 목장 주제는 고난을 넘는 예수의 속죄(贖罪)입니다.

 

 

고난을 넘는 예수의 속죄 (贖罪)
 

기독교 신앙과 타 종교의 신앙을 비교할 때 가장 대비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타 종교 안에는 자신들이 신으로 여기는 대상이 고난을 받지 않거나 혹은 면제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적 대상이 고난을 받으면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을 아주 자세하게 성경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죄 없으신 분이 고난을 받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대신 고난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신자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스스로 택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경우, 고난의 뒤에는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죄의 결과로 고난이 온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이 욥기서입니다. 욥은 당대 의롭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욥기서1장에 기술합니다. 그러나 욥기서 마지막장 42장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32:6) 욥에게 찾아온 고난 앞에 그 고난 뒤에 자신의 죄가 있었음을 알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다가온 고난은 사실 우리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깊히 인식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1) 고난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누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자기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고난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오늘 목장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육체적 고난을 통하여 죄가 모두 사해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놀라운 은총이자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더 부연해서 증거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주님이 우리 대신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고, 그로말미암아 우리 죄가 대속 되었다면 죄를 그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함을 입은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그치고 의의 자리로 성결의 자리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럴 때 고난을 넘게 되고, 고난 너머 예비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은혜와 복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