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3-05-06 09:23:26 조회수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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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50]

50.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4월의 사역이 은혜 가운데 종결되었습니다. ‘선한 능력으로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의 주제로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삶이 끝나는 시간 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내면을 우울하게 하고, 고독하게 합니다. 틈만나면 세상과 비교하게 하여 열등한 존재로 몰아갑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주님을 향한 열망과 열정도 소진케 만듭니다. 결국은 삶에 대하여 좌절하고 낙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닐뿐더러, 구원받은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자는 그 내면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늘 충만케 해야합니다. 복음에서 오는 기쁨으로, 사랑에서 오는 기쁨으로, 믿음에서 오는 기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바랄 때 오는 기쁨으로, 소망을 취할 때 오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이 기쁨이 가득할 때, 삶의 부요함과 풍성함이 넘치게 되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이제 한걸음 더나아가 5월에는 선한 능력-고난을 넘음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신자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고난입니다. 고난은 우리 주님도 공생애 기간 내내 받았던 어려움이었습니다. 고난의 정점은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주님은 고난을 수용하셨고, 고난을 담당하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맞으셨습니다. 신자의 고난도 동일합니다. 고난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을 받아들여 고난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있습니다. 타 종교처럼, 고난을 피해가는 방법을 찾거나 고난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데 있지 않습니다. 신자는 고난 앞에 정면대응하며 동시에 고난 너머에 있는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여. 주의 사명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금주는 고난을 넘는 위로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고난을 넘는 말씀의 위로

 

기독교 신앙은 핍박과 고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수많은 고통의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2천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고통이 없었고, 수난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숱한 고초의 시기를 거쳐 오늘의 기독교 신앙이 신자들에게 주어졌고, 지금도 고통 당하는 수많은 신자들이 굴하지 않고 복음 사역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나의 고난 중의...’ 현재 시편기자는 고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고난이 종료되지 않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고난이 끝나지 않고 현재 계속중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형국 앞에 직면한 분들이 있습니다. 고난은 그 때를 잘 인지할 수 없습니다. 고난의 때를 인지 할 수 있다면 누구든 다 대비하고 준비할 것입니다. 불현듯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고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가 이러한 고난을 맞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고난이 그대로 있고, 그대로 머물고 있는데, 위로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역설입니다. 고난중이면 사람은 두려워하게 되고, 분주해지고, 불안정 할 텐데 고난 중의 위로라고 합니다. 고난 한가운데이지만, 흔들림 없는 안정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합니까? 시편기자는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고 합니다. 주의 말씀이 고난 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위로 라고 말합니. 그리고 이렇게 더 부연하여 말합니다. 이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때문이니이다 신자의 삶의 여정은 수백개의 고개를 넘는 순례자와 같습니다. 한 고개를 넘으면 다음 고개가, 또 한 고개를 넘으면 그 다음 고개가...이러한 고통의 고개를 넘게 되는 것과 방불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가도록 하는 것은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주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주의 말씀이 거하길 바랍니다. 말씀이 고난을 밤을 통과하는 시편 기자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주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거함으로 고난을 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