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9-10-22 13:51:29 조회수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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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셋째주) 
영적 옳음을 취함-아브라함

 

 

[본문:창세기 17:1-5]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우리는 지난 두 주간 라합노아의 신앙을 통해 영적 옳음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정탐꾼에 대한 라합의 태도는 민족적 관점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편듬으로 구속 사역에 동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성경은 이 여인의 이름을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에 등재합니다. 이렇게 라합의 이름이 메시야의 계보에 오름으로, 성경은 무엇이 영적으로 옳은 일인가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아 또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다는 놀라운 주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세상은 노아의 행위에 대하여 비난하고 조롱 했지만, 거기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옳다 하시는 일에 동의하고 참여 할 수 있어야 그것이 옳음을 취하는 것이고, 그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소명을 따라 감당할 때 구속의 사역은 더 빨리 완성되는 것입니다. 금주는 아브라함인생을 살피면서 영적 옳음이 무엇인지를 더 깊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

 

기독교 신앙에서 아브라함을 빼놓고 믿음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하여 아주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고, 신자들은 창세기를 읽음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합니다.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두 시점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브람이었을 때의 시기와 또 하나는 아브라함의 시기였을 때입니다. 창세기 17장 전반부 까지는 그 이름이 아브람으로 소개되고, 창세기 17장 후반부 부터는 아브라함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는 무엇에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람이 99세때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여기 주목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완전이라는 말이 옳음과 동일한 말로 대치 할 수 있습니다. 옳다는 것은 완전한 것을 말하고, 완전할 때 옳음이 담보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생애가 창세기 17장 이전에는 불완전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완전하게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동안 옳게 행하여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옳다 여겨주시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옳다 여겨주시는 그 놀라운 일에 하나님은 그의 인생에 언약을 놓아두십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17:2)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을 언약의 체결 대상으로 설정해주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을 영원한 주의 백성 안으로 편입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윤리와 도덕과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시작되었고, 그의 긍휼과 자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그 이름을 바꾸도록 하신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이름안에 언약이 있음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이 언약을 붙들고 가는 한, 그는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윤리나 도덕이나, 선행의 공로로는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지만,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 여김 받았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이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완전한 의인은 없습니다. 절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100% 완전할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옳다 편들어주시고, 우리를 그 범주 안에 포함시켜주시는 것은 하나님 과 나 사이에 언약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 언약 안에서 옳다 인정받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늘 감사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