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시편149: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4월의 사역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은혜 아닌 것이 없기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신자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네 주간 ‘복음에서 오는 기쁨’ ‘사랑에서 오는 기쁨’ ‘믿음에서 오는 기쁨’ ‘다시 오실 주님을 바랄 때 오는 기쁨’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신자의 삶에 기쁨은 세상을 이기는 기초이자 근원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가변적 기쁨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항구적인 기쁨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 기쁨을 영혼 중심에 담고 있었고,기쁨이 주는 능력으로 어둠을 뚫고 승리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신자들도 이 기쁨을 가슴 중심에 두어야 하고, 영적 공동체인 교회 안에도 두어야 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신자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려고 환경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만듭니다. 문제 앞에 직면하게 하고, 원치 않는 인간관계에 얽히도록 하여 삶을 힘들게합니다. 이러한 영적 싸움 한 복판에, 신자가 승리하는 유일한 방도는 주의 말씀을 삶에 중심에 두고, 말씀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4)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나의 기쁨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입니다. 신자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현실을 넘게 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목장예배를 드리는 모든 목원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금주는 4월의 마지막 주간으로 ‘소망을 취할 때 오는 기쁨’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세상에 최종적 목표나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곳이고, 주의 재림과 함께 심판을 받을 대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떠나 도피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선교의 현장이고, 세상 안에 거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목적으로 두면,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되고, 세속화된 신앙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만일 세상이 최종 목적이었다면 주님이 승천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세상에 머무셨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주님은 제자들과 일단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목도하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세상이 궁극적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대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신자가 위를 보며 산다는 것은 곧 소망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자와 비신자의 현격한 차이는 신자는 소망의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이 소망은 세상이 말하는 꿈과 야망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소망은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오는 것이며, 영원이 존재하는 주의 통치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놀라운 것입니다. 소망은 학습하다고 주어지거나, 노력한다고 소유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시편기자는 ‘...소망을 가지게 하셨다’라고 말합니다. 기억해야합니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상에 거하는 자기 백성에게 이 소망을 주십니다. 오늘 목장예배를 드리는 모든 목원들에게 주님이 소망을 주실 때 취하는 축복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신자가 어려운 환경 앞에서도 소망을 취하고 있으면 그의 영혼을 늘 기쁨 가운데 삽니다. 소망이 환경을 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역경과 환란은 소망 앞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늘 이 소망이 우리 목장 안에, 가정과 교회 안에 충만하여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