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로마서 15:13]
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히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②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
4월의 사역 주제는 ‘성령의 임재 안에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성령 공동체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믿음으로 행하는 공동체이고, 인간의 자기 주장으로 자기 정욕을 구하는 자리가 세상입니다. 교회와 세상은 이렇게 다르고 다른 목적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교회가 출발하는 1세기 기독교를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을 기점으로 교회는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했고,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의 조류를 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래야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하고, 그 능력으로 신앙의 거룩함을 회복해야합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윤리적 도덕적 거룩을 넘어 기독교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교회 공동체와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안에는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유지되는 공동체가 많습니다. 물론 교회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여기에만 머문다면 교회와 세상의 구분점은 없어집니다. 교회는 여기를 뛰어 넘어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유일한 진리이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명 앞으로 가게 됨을 명시해야합니다. 이것을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 신앙이 견고하게 자리할 것인가 아니면 동력을 잃어 조류에 떠내려가고 말것인가 하는 존립의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기에 더욱 기독교 신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1세기 교회에 부어졌던 성령이 우리 모든 교회들 안에 부어져 그 능력으로 세상을 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금주의 목장 주제는 ‘성령의 임재-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입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힘을 원합니다. 힘이 있어야 유지되고 운용되기 때문입니다. 기업도 그렇고 정당도 그렇고 심지어는 시민단체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힘을 구하는 것은 오늘만의 요구는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이들도 출생하면 가장 먼저 힘의 원리를 습득하게 되고 힘의 지배 논리를 인지하고 그 원리를 따라 삶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힘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데, 공동체를 수호하는데 필수 요소일 것입니다. 신자도 세상이 부여한 힘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 힘이 악을 부추기거나, 삶을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건강하게 부여된 힘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할 것은 신자가 부여받은 힘은 세상의 힘만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진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지니지 못하는 힘입니다. 1세기 교회에 부어졌던 힘입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초월의 힘입니다. 시공간에 제약되지 않고 어느 곳에나 임하는 힘입니다. 신자는 이 힘을 부여받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성령이 유대인들을 넘어 이방인에게 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베드로 사도는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는데, 놀라운 것은 이미 성령의 능력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0:45-46) 성령은 인종과 성별, 나라와 민족을 넘어 역사하시는 초월의 영이십니다. 자기백성들에게 능력으로 오십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도 능력으로 오셨습니다. 이미 우리안에 임하신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하도록 삶을 정비해야합니다. 무너진 영적질서를 바로잡고, 허물어진 신앙의 담장을 다시 세우고, 삶을 공허하게 만들었던 세상의 문화와 가치를 버려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살면 어둠은 떠나고, 두려움도 떠나고 사단도 떠나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