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4-03-02 09:17:38 조회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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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월의 사역이 은혜 가운데 종결되었습니다. 교회는 은혜로 유지되고 은혜로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 주님의 은혜가 빠져 나가면, 교회는 지극히 인본적 공동체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은혜 없는 교회, 긍휼 없는 신앙 공동체는 언제나 그랬듯이,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고맙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 안에, 성도의 삶에 위로부터 공급되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달, 삶이 치유되어 회복을 누리는 공동체의 주제로 사역했습니다. 삶의 치유는 세상을 승리하는데 필수적 과정입니다. 삶의 치유없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또 동시에 신앙의 치유없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더 더욱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에 잘못된 신앙의 요소들이 삶에 들어옴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봅니다. 특별히 가치관의 혼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극단의 물질주의가 팽배해 질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전 시대도 그랬지만, 지금 21세기는 더욱 오염된 신앙의 주장들이 신자의 삶을 어렵게 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흐름들이 교회 안에, 신자의 삶 안에 유입되고 있기에 3월은 신앙의 치유의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월의 목장 주제는 신앙이 치유되어 회복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예수그리스도-대속자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代贖)자 임을 수용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대속의 문자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노예나 죄인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대신 지불하여 구원함을 얻음을 의미합니다. 이 때 지불된 것을 대속물이라 합니다.(18:15). 구약에서는 삶의 죄의 대상(代償 대신갚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30:12, 35:31)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35:10절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는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약으로 오게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를 대신 갚음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자기백성을 대속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백성에게로 오셨지만, 모든 백성을 구원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대속자이시고,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그의 제자들(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열방으로 흩어졌을 때, 자칭 대속자라고 지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기독교 신앙은 아직 체계화 되어 있지 않았고, 성경이 정경(66)으로 완성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을 틈타 자칭 구원자, 대속자라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선봉에 섰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부들입니다. 교부(敎父), 사도들(예수님의 제자들)의 뒤를 이어 기독교 신앙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신학의 발전에 공헌한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교부들로 로마의 클레멘트1, 수리아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의 폴리캅, 폴리캅의 제자였던 이레네우스,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 가이사랴의 오리겐, 갑바도기아의 바질,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그 유명한 북아프리카의 어거스틴이 대표적인 교부들입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자이며 구원자시다. 누구도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할 수 없고, 누구도 인간을 구원할 주()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정통성이 지금도 개신교회의 뿌리이며, 신자의 신앙을 유지케 하는 기초입니다.기억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 대속자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어떤 영험한 피조물도 불가합니다. 주님 이 땅에 오실 때 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속자, 구원자가 되심으로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