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0-06-27 09: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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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넷째주] ④ 성화(聖化)-초월하며 살기

 

[본문:베드로전서1:6-7]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6월달 사역의 주제는 ‘지성소로 나아가 성화(聖化) 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 주간 성화(聖化)-‘영적 질서’ ‘본성극복’ ‘백성답게 살기’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신자는 세상 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세상에 종속되거나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은 세상과 대비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대비되어야 하고, 구별되어야 하는가? 구별의 삶을 통해 주권자 하나님이 이 땅과 나라를 지배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이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가난한 것이고 무기력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49:3) 신자가 어떤 존재인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신자 각자의 인생 속에 나타내도록 되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빛을 발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그의 영광을 나타내며 사는 구체적인 삶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동화되거나 혼합되지 않고, 초월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삶의 정황이나 조건으로 인해 분주하고 염려하고,우울하게 산다 할지라도, 신자는 의연하게 그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초연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삶에 중요한 주제입니다. 금주는 이 차원에서 ‘초월하며 살기’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도록 합니다. 

 

  ④ 성화(聖化)-초월하며 살기

  기독교 신앙은 현실을 도피하거나 회피하며 사는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선교의 현장은 세상이고, 그 세상안에 놓여있는 하나님의 자기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그 목표이기때문입니다. 세상은 주님 재림하실 때 심판받아야 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구원의 역사를 펼쳐야 할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무인도로 가서 신앙을 영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그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받을 백성을 찾아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신자들에게 우호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삶에 장애를 초래하게 하며, 때로는 큰 유혹거리로 삶을 흔들리게 합니다. 이 시험은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직전, 광야에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류의 시험을 받았다면 신자된 자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오늘 본문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당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이 여러 가지 시험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 시험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여러운 현실적인 시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여러 가지 시험 앞에 직면해 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본문에 중요한 단초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라는 구절입니다. 신자의 삶의 끝은 육체의 연수가 아닙니다. 70이나 80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힘으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그 다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실 때, 곧 주의 재림의 때입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다음의 시간이 도래할 것을 믿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마음과 영혼은 다음 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맞딱뜨리는 문제 앞에 초연해야 하고, 또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능력이요 성화의 길을 가는 자의 영적 태도입니다. 이 한주간 사건과 문제 앞에 요동하지 마시고, 의연하게 그 길을 걸어감으로 삶의 자리에 주의 영광이 계속되는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