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9-12-10 16:50:53
네이버
첨부파일 :
2018_06_02_pkopi1_katholiciteit_6_fc_v_web_1.jpg

희망에 집중-하나님의 뜻

 

[본문:예레미야 29:10-11]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  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  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월 사역의 주제는 희망에 집중하며 동역하는 교회입니다. 지난주에는 희망에 집중-예수 그리스도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희망은 탁월함을 갖춘 세상의 어떤 지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언약), 곧 그 언약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희망인가?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과 평안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누구든지 그의 통치를 수용하는 사람마다 구원을 경험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소유하며, 그 평강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금주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희망의 집중-하나님의 뜻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뜻

 

   사람들이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때 유명한 책이나, 어떤 강연에서 듣게되는 좋은 메시지에서 그 동기를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깊은 좌절 가운데 직면해 있다가 어느날 좋은 강연 한편을 듣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우연하게 건네받은 책 한권을 읽고 용기를 내어 삶에 재 도전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그런 까닭에 요즘은 유명한 강연자가 특별한 자리에,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서 경연하면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열심히 경청하고, 때로는 노트도 하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 희망의 동기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좋은 일이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유명 강연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나 방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인생의 성패는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그 결말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신자의 인생은 더더욱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곧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이 형상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품, 그의 의지, 그의 뜻을 인지하도록 창조하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타락하기 전 인간은 그의 인생의 목적이 그를 창조하신 분의 생각과 뜻이 최종 목적이요 최종 삶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유입되고 그 죄가 아담을 통해 유전됨으로 그 형상은 깨어지게 되었고, 동시에 삶의 목적도 그를 만드신 분의 뜻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 따른 지극히 정욕적이고 유한한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인간의 모든 희망은 땅 엣 것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은 모든 신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1-2)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림을 받은 모든 인생들은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희망은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뜻과 불일치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수용할 때 희망이 찾아오고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빗나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앞으로 돌아와 회복하여 샬롬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례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을 회복케 하여 평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기억 할 것은 평안편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질서안에서 오는 영적 안정감입니다. 하지만 편안은 다릅니다. 그것은 육체로부터 오는 안정감입니다. 후자도 중요하지만, 오늘 본문은 평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의 희망의 기초로 삼으면 평안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희망은 인간이 설정한 꿈에 있지 않고 그의 뜻, 주권자의 뜻 안에 있습니다. 그의 뜻을 자신의 삶에 채우고 나아가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