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8-09-29 09:58:42
네이버
첨부파일 :
십자가_긍휼.jpg

9월 마지막주

의를 구하는 삶  ⑤긍휼에 기반한 하나님의 의(義)

본문:시편 116:3-5 

 

 

의를 구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이제 마지막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지난 4주간 4개의 주제로 말씀을 살폈는데, 그 주제는 하나님만 의롭다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의 의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 선택하는 의가 아닌 주어진 의()였습니다. 의 문제는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에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주제이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의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가를 보면서, 잠시라도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훼손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시간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베푸시는 의()인간이 구비해야할 조건에 기인하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긍휼에 기반한 하나님의 의

 

’()의 문제는 어느 시대어느 세대나 할 것 없이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 중요한 삶의 주제였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그것이 ()’였는데, 그 시대가 지나고, 다음시대가 도래 했을 때, ()’는 불의로 규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세대에는 참으로 정의로웠던 것이, 그 세대가 지난 다음 그 ()’가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판정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근대 현대사를 보면, 불과 10년전에 옳았던 것이 다른 정권이 집권 하면 불의한 것으로 치부되어 법의 심판을 받게 합니다. 이제는 그 주기가 빨라져서 5년에 한번씩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의 기준이 달라지고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다시 규정되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부족함부실함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는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으로 가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의 체계로 만든 법()도 완벽할 수가 없고, 그것을 지킨다고 해서 구원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는 세상이 규정한 정의’(justice)가 아니라 하나님만 옳으시다’ (righteousness)를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불의 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흠 없는 공의로 무장한 인간도 하나님의 절대 무결한 의로움 앞에는 부정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족하고 부실한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 구원의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어떤 조건을 잘 구비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그분의 긍휼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그 긍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의 자리에, 부실했던 다윗도 ()’의 반열에 세우신 것입니다. 또 동시에 이 목장교안을 대하는 우리에게도 그 긍휼이 임하여 의로움을 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누가 자신의 의로움이 높은 레벨에 도달하여 ()’를 스스로 취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8-29) 오늘 본문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그 은혜와 긍휼은 측량하기 어려우며 한정하기 불가능한 신적 자비하심입니다. 그 긍휼과 자비로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셨고, 죄인인 우리를 의인의 신분으로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주권자의 긍휼에 기반한 그의 의()가 우리 인생에 도달했음을 기억하시고, 인간의 자기 의()자기 자랑은 모두 십자가 뒤에 감추고, 오직 주권자의 이름과 영광만을 나타내는 복된 생애가 되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