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훈련교안

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5-07-19 07:58:35 조회수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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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5-26]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7월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역의 장에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도 삶의 자리에 주의 거룩한 영광이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7월의 사역의 주제는 세상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 초월-고난 넘기’  ‘초월-인본세계관 넘기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신자는 세상과 분리된 존재입니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영과 혼이 분리된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에 동화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세상을 초월하는 존재이기에 구별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가치에 대해 무조건 수용 할 것이 아니라, 경계해야 하고, 그것이 옳은지를 확인해야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 앞으로 나아갈 때 진리의 빛을 보게 되고 자유하게 됩니다. 금주는 그 연장선에서 죽음의 초월의 문제를 말씀을 통해 생각하길 원합니다. 금주의 목장 주제는 죽음의 두려움 넘기입니다.

죽음의 두려움 넘기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현실입니다. 부유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게 될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습니다.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죽음은 '알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습니다.눈으로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세계, 그것이 죽음 너머의 영역입니다. 둘째, 죽음은 이 땅의 모든 관계와 단절되는 순간입니다. 가족, 친구, 일터, 삶의 자리에서 떠나야만 합니다.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들과 작별해야 합니다. 셋째, 더 깊은 이유는 바로 죄와 심판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 이후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내면의 두려움이 우리를 흔듭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지 육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를 피할 수 없다는 본능적인 자각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전혀 다르게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 계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미 슬픔에 빠져 있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선언이었고,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완전히 새롭게 밝히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죽음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며, 잠시의 이별이자 더 나은 세계로의 초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이며 생명이라고 선언하셨고, 그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실제로 통과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기억해야합니다. 그를 믿는 모든 자도 죽음을 이기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교회에 다니고, 예배드리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며, 죽음 너머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믿음은 죽음을 없애주지는 않지만, 죽음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줍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한 자로 설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18절은 말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알고 믿을 때,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죽음 너머에도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날, 우리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 볼 것을 기대하며 긍정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담대히 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